저자 도스토예프스키는(1821~1881) 러시아의 소설가로 '넋의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여 근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습니다. 저서로는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등이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좋은 점들 중의 하나가 책을 읽은 이력과 간단한 소감을 이력 관리하고 필요하면 검색해서 과거의 감회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매주 책을 읽을 때마다 등록하는 재미가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주 1~3권까지도 등록하게 되었고 어느새 100권을 훌쩍 넘었습니다. 2017년에 읽었던 책이 섞여 있습니다.
1990년대 초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공대생이지만 지식의 폭이 너무나 협소했기에 조금이라도 넓혀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읽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대학입시에 나온다는 한국 현대문학을 읽기도 벅차게 느껴졌기에 해외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사치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우선 고전을 읽어보기로 하고 선택했던 것이 <까라마조프의 형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읽어본 경험도 없고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시기였기에 이 책이 <죄와 벌>처럼 길고 따분한 책으로 기억됩니다. 물론 끝까지 읽고 나서는 개략적인 내용은 알기에 이 정도면 교양인으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 정도는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세월이 30년 가까이 흐르고 난 뒤에 어느 글에선가 <까라마조프의 형제>가 인용된 부분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과 내용은 이미 백지상태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책장에 책들을 재배열하면서 <까라마조프의 형제> 상하권을 가지고 있던 것이 기억나서 찾아봤습니다. 그 이후 읽지 않았기에 노랗게 변색된 채로 우리 가족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과감하게 최근에 신간을 보고싶은 욕구를 억제하고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책들에 비해 글자도 작고 페이지수가 600페이지를 넘나드는 장편입니다. 하지만 상권을 읽어나가면서 어렴풋이 희미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성경의 내용을 알기에 이제는 이 소설에서 인용하는 신구약의 내용이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함께 이해가 됩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살던 시대상황과 서민들의 언어, 종교 등 여러 문화적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수명은 짧기에 시간의 제약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시간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제약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시간 여행은 왠지 축축하고 차갑습니다.
- 표도르 빠블로비치 : 까라마조프가의 아버지로 지방의 소지주로 성장하며 육체적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퇴폐적 인간으로 묘사됩니다.
- 드미뜨리 빠블로비치 : 표도르의 맏아들로 27세의 퇴역장교로 충동적이고 반항적인 기질의 소유자로서 방종한 생활을 하나, 내면적으로는 고결하고 공명 정대한 성품을 지닌 청년입니다.
- 이반 빠블로비치 : 표도르의 둘째 아들로 드미뜨리의 이복동생이며 뛰어난 지성과 천재적 두뇌를 지닌 철저한 무신론자입니다. 까라마조프가의 사상적 체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알렉세이 빠블로비치 : 표도르의 셋째 아들로 이반의 친동생이며 학업을 중단하고 수도원에 들어간 수도사 지망생입니다. 천사같이 순진무구한 청년으로서 추악한 까라마조프가에 종교적인 밝은 빛을 비추어 줍니다.
- 스메르쟈꼬프 : 표도르의 사생아로 비열하고 오만한 성격을 지닌 간질병 환자입니다.
- 까째리나 이바노브나 : 뛰어난 미모와 귀부인다운 품위를 지닌 여자로 드미뜨리와 약혼한 사이이나 뒤늦게 이반을 사랑하고 있음을 자각합니다.
- 그루센까 : 어린 나이에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체념하여 분방한 생활을 하나 영혼 속에는 정결한 정조관을 지닌 여자로 후에 드미뜨리의 사랑에 굴복합니다.
- 뾰뜨르 알렉산드로비치 미우쏘프 : 표도르의 전처 아젤라이다 이바노브나의 사촌 오빠로 드미뜨리의 후견인이며 많은 재산을 소유한 대지주로서 진보적 사상의 정상에 서 있다고 자처하는 무신론자입니다.
- 조시마 장로 : 알료샤의 스승으로서 그의 정신적 지주로 작자가 러시아 수도사의 이상형으로 등장시킨 인물입니다.
- 빠이시 신부 : 수도원의 수사신부로 조시마 장로의 사후 알료샤를 맡아 지도합니다.
- 라끼찐 : 알료샤의 수도원 친구로 자기의 재능을 과신하여 자만에 빠지며 세속적이고 경박한 청년입니다.
- 리자 : 여지주 호홀라꼬바 부인의 딸로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못 쓰는 소녀로서 알료샤를 사랑합니다.
- 그리고리 : 표도르의 어린 세 아들을 맡아 기른 충직한 하인입니다 .
상권에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을 정리합니다.
40) 러시아 장로 제도에 대해 - 우선 첫째로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장로와 장로 제도라는 것이 우리나라 수도원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로, 아직 백 년도 못 되었지만, 그리스 정교를 믿는 동방 제국, 특히 시나이와 아토스에서는 이미 천여 년 전부터 있던 제도라고 한다. 우리 러시아에도 옛날엔 장로 제도가 있었고 또 반드시 존재했어야만 했겠지만 러시아의 국난, 즉 타타르 족의 침입이라든지 내란이라든지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의 동방과의 교통 두절 등으로 말미암아 이 제도가 잊혀져 마침내 장로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부활한 것은 전세기 말엽부터의 일인데, 그것은 이른바 위대한 고행자 중의 하나인 빠이시 벨리치꼽스끼와 그 제자들에 의해서였다.
63)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 자신도 알고 있을 거요. 그만한 지혜는 당신도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까요. 음주를 삼가고 말을 조심하고 방탕에 빠지지 말 것이며, 특히 돈을 숭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114) 그 사람 역시 까라마조프거든, 호색과 탐욕과 광신 - 바로 여기에 자네 까라마조프 일가의 모든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거야.
127) 거룩하신 신부님들, 수도원에 틀어박혀 남이 주는 빵을 드시며 천국의 보상을 기다리기보다는 인간 세계에 나가서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덕행을 쌓는 게 어떻겠습니까-하지만 그쪽이 더 어려울 겁니다.
154) 누구나 똑같은 층계에 서 있는 거예요. 다만 내가 제일 아랫단에 서 있다고 한다면, 형님은 좀 더 위 열서너 계단쯤 되는 곳에 서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 문제를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요. 결국 똑같은 성질의 것이지요. 맨 아랫단에 발을 디딘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맨 위단까지 올라가게 마련이니까요.
189) 아무래도 이반 쪽이 옳은 것 같군. 아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구나. 인간이 얼마나 많은 신앙을 바쳐 왔고, 또 얼마나 많은 정력을 이런 공상에 헛되이 소비했는지! 그리고 그런 걸 수천 년 동안이나 반복해 왔으니 말이야!
222) 죄악이나 악마는 속세에서만이 아니라 수도원 안에서도 유혹의 손을 뻗치고 있다.
241) 모두들 추악한 행동을 욕하고 있지만, 실은 누구나가 다 그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다만 딴 놈들은 몰래 그런 짓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걸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야.
287)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말 잔인합니다. 하나하나 떨어져 있을 때는 모두 천사 같지만 한데 모이면, 특히 학교 같은 곳에서는 잔인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놀려대니까 일류 샤의 가슴속에 고귀한 복수 정신이 고개를 쳐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335) 너는 <햄릿>에 나오는 폴로니어스처럼 말을 돌려 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하고 이반은 웃었다.
347) <노트르 담의 꼽추> 속에는 루이 시대에 왕자 탄생 축하를 위해 파리 시 의사당에서 <그리 없이 신성하고 자비로우신 동정녀 마리아의 공정한 재판>이라는 표제의 교훈극이 백성들을 위해 무료로 공개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고, 이 극에서는 성모께서 직접 무대에 나타나서 그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그리고 우리 러시아에서도 뾰뜨르 대제 이전의 모스크바에서 주로 <구약>에서 취재한 비슷한 연극들이 가끔 상연되곤 했었지.
353) 노인 자신도 그리스도는 옛날에 자기가 말한 것 이외에 무엇하나 덧붙일 권리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으니 말이야.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바로 여기에 로마 카톨릭의 가장 근본적인 특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너는 이미 모든 것을 교황에게 넘겨주지 않았느냐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모든 것이 교황의 수중에 있는 거야. 그러니 이제는 제발 나타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어느 시기가 올 때까지는 방해를 말아 주게'라고 말하는 거야.
369) 나는 어쩐지 프리메이슨(Freemason)의 그 밑바닥에도 이와 비슷한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카돌릭교도들이 프리메이슨을 미워하는 까닭은 그것을 자기들의 경쟁자 내지는 이상의 단일성의 파괴자라고 보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양떼도 하나, 목자도 하나여야 하기 때문이지.
405) 인간이 모든 행복을 맛보는 데는 하루면 충분해요. 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고 서로 허세를 부리며 서로 앙심을 품는 것일까요? 차라리 곧장 정원에 나가 산책을 하며 즐기기도 하고 서로 사랑하고 칭찬하고 입맞추며 우리의 생을 축복하는 게 어때요?
420) 우리 주위에 있는 하느님의 선물을 보십시오.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부드러운 풀, 작은 새들, 자연은 아름답고 순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인간만은 어리석게도 하느님을 모르고 인생이 낙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508) 그는 대지에 몸을 던졌을 때는 연약한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대지에서 일어났을 때는 한평생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힘을 가진 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홀연히 이것을 자각했다. 그는 환희의 순간에 이것을 직감한 것이다. 알료샤는 그 후 일생 동안 이 순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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