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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61]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_1999년 콜럼바인 총격 사건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의 이야기

by bandiburi 2024. 3. 31.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아내가 도서관에서 전시되어 있는 책을 우연히 펼쳐보다가 읽어봐야겠다 싶어 빌린 책이다. 다른 책과는 달리 아내가 몰입해서 단숨에 읽기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봤다. 같은 부모로서 아들을 잃은 저자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더구나 아들이 자살하기 전에 다른 아이들을 살해하고 죽었기에 가해자의 엄마로서의 충격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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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A Mother's Reckoning>으로 가해자 두 명 중의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1999년 4월 20일 사고가 접한 이후 경험했던 과정을 자신의 일기와 기억을 정리한 기록물이다. 이 책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살인이나 자살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담고 있고,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포함되어 있어 유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콜럼바인고등학교 (출처: flickr)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유사하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예의 바르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자립된 성인으로 자라는 거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도 남편인 톰과 함께 두 아들 바이런과 딜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약, 담배, 술, 총기에 대해 허용하지 않았다.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두 아들과 관계가 친밀하니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면, 더군다나 무언가가 아주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직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딜런의 생각과 감정을 모두 안다고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딜런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173)

딜런의 약장에서 거의 다 먹은 성요한초 약병을 발견하고 더욱 슬퍼졌다. 나는 딜런이 쓰는 화장실이 깨끗한지 본다고 수시로 드나들면서도 약장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성요한초는 건강식품 가게나 약방에서 파는 천연 항우울제다. (179)

 

태어나면서부터 늘 지켜보고 있기에 자신의 자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였다. 사고가 난 직후에 자신의 아들이 가해자가 되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아들은 살인이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하지 않을 아이라는 생각이다. 특별히 사춘기 시절을 어렵게 보내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어떤 부모도 평범한 자녀가 총을 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사춘기에 좌충우돌 부모와 갈등을 겪어도 지나가려니 생각하게 마련이다. 

자살로 아들을 잃은 아이리스 볼턴은 이렇게 썼다. "내 죽음이나 내 아이들이나 가족의 죽음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비극은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실이 드러났을 때에는 무시무시하게 닥쳐오기 마련이다. (189)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기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349~350)

수 클리볼드의 아들에 대한 믿음은 아들이 사건 직전에 촬영한 동영상을 보며 산산조각이 난다. 동일한 아들의 모습에 또 다른 인격체가 들어 있었다. 어떻게 내 아들에게 저런 모습이 있을 수 있나 정신적 쇼크는 컸다. 아들의 일기와 아들이 우울증 약을 발견하며 자신이 아들과 보낸 일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아들과 일상의 건조한 대화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들의 어려움을 찾지 못한 점을 크게 후회한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직장으로 돌아간 일이 여러 면에서 나의 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기반이 되어 주었다. (200)

 

언론보도가 확산을 억제할 수도 자극할 수도 있다면, 프랭크 옥버그와 체이네프 투페키 박사 등 언론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살인-자살에 대한 새로운 보도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234)

그렇지만 딜런의 일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딜런의 삶과 딜런 자신이 바라보는 것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살 유가족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도 하다. (261)

저자는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서서히 회복한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환경 속에서는 공황장애를 일으킨다. 우리는 원래 건강하고 일상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웃과 가족들이다. 수 클리볼드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공동체가 있었다. 

아이를 자살로 잃은 다른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은 필요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실리어가 손을 뻗었을 때 나는 떨어지는 사람이 밧줄을 잡듯이 그 손을 꽉 쥐었다. (390)

이날을 계기로 나는 자살과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에 진지하게 참여했다. 등록 테이블을 맡았고 프로그램 안내문을 접었다. (...)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껴안고, 이야기를 들었다. (401)

우리 사회에도 사회적인 트라우마를 줄 정도의 커다란 사고가 이어졌다. 세월호 사건은 특히 큰 충격이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사건과 같이 세월호 침몰사고도 새파란 고등학생들이 희생되었다.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상실감과 고통, 후회가 어땠을까 다시 한번 이 책을 보며 되새겨본다. 그들의 마음에 얼마나 나는 공감했었나. 이태원에서 있었던 사고도 그 유가족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안타까운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왜일까. 재난과 사고에 대한 국가적인 컨트롤타워 기능과 유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양심과 공감, 권한과 책임, 행복과 헌신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공유해야 할 이런 단어들에 대한 생각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불안장애를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어 수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뇌건강 문제는 심장병이나 인대가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건강 문제라는 사실이 갑자기 한낮처럼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런 건강 문제와 다를 바 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먼저 병을 깨닫고 진단을 받아야 한다. (437)

'왜' 대신에 '어떻게'라고 물으면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 자체로 규명할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길에 접어들게 되는가? 어떻게 해서 뇌에서 자기 통제, 자기 보존, 양심 등의 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가? 어떻게 왜곡된 사고를 확인하고 조기에 교정할 수 있을까? (...) (441)

수 클리볼드와 같은 가해자의 엄마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해서, 끔찍한 사건이 일회성 뉴스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면교사를 삼아 다른 사고를 예방하고, 부모가 자식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책을 모두 읽고 시선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리게 된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고,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정말 자식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후에르터와 라킨 두 사람 다 콜럼바인 복도에서 괴롭힘과 폭력이 일어나도 교사들이 못 본 척했다고 주장한다.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거나 혹은 괴롭힘을 가하는 인기 있는 운동부 학생들을 편애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사건을 알려도 학교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례들이 인용되었다. (304)

해가 지나며 톰과 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넓어져 공통점은 거의 남지 않았고 다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리를 놓을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2014년, 결혼한 지 43년 만에 우리는 헤어지기로 했다. (432)

육아의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는 문화 속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불안하고 답답할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이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 가설(The Nature Assumption: Why Children Turn Out the Way They Do)>이다. 부모는 아이의 성격이 결정되는 데 (유전적 영향을 제외하면)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아이들은 집 밖에서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을 형성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은 육아의 책임을 가정에서 학교, 사회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특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471)


독서습관 861_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_2019_반비(240331)


■ 저자: 수 클리볼드

1999년 열세 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낸 콜럼바인 총격 사건의 가해자 두 명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딜런 클리볼드는 총격 후 자살했다. 수는 대학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역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던 평범한 엄마였다. 현재는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자살 예방에 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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