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이야기에 매료되어 읽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드디더 마지막 10권에 도달했는데 아직까지 주인공 임꺽정에게 위기가 닥치고 마무리가 될 시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는데 결론은 금세 100페이지가 넘어가며 알게 되었습니다.
임꺽정 무리들이 관군을 피해 청석골을 떠나 자모산성으로 들어가고, 청석골에 남아있던 오가가 외롭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에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허탈한 심정이었습니다.
18년 2월에 읽었던 고 최명희씨의 장편소설 <혼불>도 작가의 건강으로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도중에 끝나서 아쉬웠는데 <임꺽정>도 이야기가 도중에 중단된 것입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임꺽정>을 읽으며 조선 중기에 서민들의 삶이 어땠는지 양반 사회가 서서히 희석되어 가고 있고 양반들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이 커져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자인 공 홍명희 선생의 맛깔난 언어의 선택은 독자를 시대를 초월해서 과거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 와중에 힘 좀 쓴다는 장사들의 통쾌한 싸움에 대한 묘사는 흥미진진함을 더합니다.
이야기가 도중에 중단되어 아쉽지만 조선 중기의 삶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필독서로 권합니다.
이하 10권 후반에 있는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139) 임꺽정의 사기는 극히 단편단편으로 떨어져 있는 것밖에 없어서 대개는 나의 복안으로 사건을 꾸미어 가지고 나갑니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에 한 가지 결핍한 것이 있지요.
그것은 조건 문학이라 하면 예전 것은 거지반 지나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건이나 담기어진 정조들이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았고, 그리고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양취가 있는 터인데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어 입지 않고 순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삼천리>9호, 1933년 9월, 664-665쪽)
151) 이 신간회 활동과 <임꺽정>의 창작은 홍명희의 개인사에 있어서 서로 맞물려 있다. 신간회를 창립한 이듬해 그는 <임꺽정>의 집필을 시작한다. 신간회 활동과 소설 창작이 함께 진행되다가 신간회 일로 1929년 12월(광주학생사건과 관련한 대중대회 사건) 일제에 체포되자 집필 또한 중단이 된다. 그리하여 옥고를 치르는 동안에 신간회는 해체되는데, 그는 1932년 출옥한 이후로 정치적 활동을 일체 중지한다. 오직 칩거상태에서 '문학적 실천'만을 지속하였으니 곧 <임꺽정>의 집필이다.
153) (중략) 그러다가 군국주이의 막장에서는 부득이 붓을 꺾고 말았다. <조선일보>의 지면은 1939년 7월 4일 자로 중단이 되고 월간지 <조광>으로 옮겨 1940년 10월호에 단 1회 실리고는 하회가 영영 나오지 못했다. 작가는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ㅅ스로 절필을 택하였으리라.
8.15 이후 <임꺽정>의 완성은 독서대중의 광범한 바람이었을 뿐 아니라, 문학사적 요구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끝끝내 미완성의 거작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퍽이나 안타까운 것이다.
155)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임꺽정 관계 주요 기사와 소설의 진행을 정리해본다.
이것을 보니 명종 14년(1559년)에서 명종 17년 1월(1562년) 사이에 의형제 편과 화적편의 시기가 된다. 서림이가 잡히고 나서 무리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청석골에서 자모산성으로 옮겼다가 이후 구월산성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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