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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65]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_인류 역사에 대한 거시적 통찰

by bandiburi 2022. 5. 14.

호모 사피엔스부터 현재 우리들까지 그리고 모든 대륙을 펼쳐놓고 노마드적 인간과 정착민들을 분석한 이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비슷한 규모로 인류를 들여다본 재러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떠올랐다. 
인류의 역사에서 어느 특정한 시공간상으로 좌표를 옮겨가며 호모 노마드의 삶을 설명하는 저자의 지식과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몇 가지로 책의 소감을 정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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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인류의 지속발전을 위한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한다.

노마드의 삶을 살던 인류가 정착민이 되어 나라를 이루고 관료제가 만들어진다. 자연스러웠던 노마드들의 이동경로가 국경으로 단절된다. 산업과 상업의 발달로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향유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던 원시 노마드들은 계몽이란 이름으로 사라지고 강제 동화시킨다. 무엇이 인류를 위한 방향일까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국가란 무엇이고 민족이란 무엇이고 경제 발전이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둘째, 인류를 인프라노마드, 정착민, 하이퍼노마드 세 가지 부류로 정의했다.

민족이나 종교상의 이유로 국가가 만들어져 정착민으로 사는 것 같지만 현재도 수많은 노마드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인프라노마드라고 정의했다. 대체로 본인들의 의지와는 달리 상황 때문에 노마드 생활을 한다. 반면에 하이퍼노마드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어디서든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세계 어디서든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가지고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하이퍼노마드의 대표적인 사례다. 

셋째, 유럽에 대해 확실하게 젊어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은 대한민국에도 필요하다. 

급격히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나라가 되었다. 젊은이들은 도전적인 일보다는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선호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외국인들의 허용, 노동, 노력, 호기심, 이동성에 대한 의욕을 되찾도록 격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트랜스휴먼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상품으로 인한 거추장스러움을 피한다. 대신 자신만의 지식과 경험, 관계 등의 구축에 힘쓴다. 그래서 돈의 노예로 살기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광범위한 인류역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노마드와 정착민으로 구분해서 보는 관점의 신선함이 있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책이다. 독서를 통해 책의 모든 내용을 흡수할 수는 없지만 다른 책과의 연결점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필요할 때 인출할 수 있는 정보의 보고를 간직하는 만족감이 있다. 

이하 내용은 책에서 남기고 싶은 부분을 발췌했다. 

 

동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의 소비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저축의 시대가 시작된다. 여기에는 유랑 생활 중에도 동물들을 이끌고 다녀야 할 필요성까지 포함되어 있다. (66)

노마드는 모아두지 않고 아끼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기생하며 살고 있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 불, 지식, 제식, 이야기, 증오, 회한과 같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들만을 전수한다. (86)

모든 혁신의 첫째 목적은 물질적이기 이전에 정신적인 차원에 있었다. 그래서 불은 추위를 막기 위한 것이기 이전에 제례의식의 도구였다. 야생동물 길들이기도 마찬가지였다. 야생동물은 젖, 가죽, 털, 고기의 공급원이기 이전에 제물이었다. 그래서 청동 야금술은 연장을 만드는 수단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제례의식 기술이었다. 교환 역시 인간들 간의 흥정이 되기 이전에 정령들에게 제물을 바쳐 폭력을 제거하는 종교 절차였다. (91)

우르는 기원전 2600년경에 또 다른 코카서스족인 수메르족에 의해 세워졌다. 수메르인들은 정착하기 위해 떠난 자기들의 여행을 노래하는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를 만든 민족이다. (...) 수메르인들은 그림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해석하기가 더 쉬운 설형문자를 만들어냈다. 수메르인들은 60진법 수 체계를 완성하여, 이로써 원이 360도로 나뉘고, 30일씩 열두 달로 된 달력, 시간, 분 등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해시계판을 생각해냈고, 루트 계산법도 정착시켰다. (107)

정착민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고, 노마드의 시간은 이야기의 시간이다.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성경이 그러하듯이. (117)

사실 그리스인의 여행과 헤브루인의 여행, 그리고 오디세이아와 성경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오디세우스의 유랑 생활처럼 유태인의 유랑 생활도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쫓겨났던 땅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인 항해자처럼 유태인 추방자들도 자신들이 떠나온 항구를 꿈꾸었던 것이다. 당시 그리스에서 유행하고 있던 사상의 주역들인 스토아학파와 키니코스학파처럼 유태인도 짐가방 없이 여행하였다. (118~119)

사르마트족의 지도자급 엘리트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이들이 때로 정복한 도시에 자리를 잡고서 그 도시를 지휘사령부로 썼다는 것과, 다른 데서처럼 여자들은 군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우세한 역할을 했을 거라는 점이 알려져 있다. 사르마트 여자들의 무덤 중 5분의 1이 무기로 채워져 있고, 또 대부분의 무덤에는 향로, 제식용 막대, 작은 종, 그 밖의 제식용품이 들어 있다. (160)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오래전부터 정착민들의 발명품인 국가는 모든 노마드들에 대항해 싸우는 것을 첫째 임무로 삼고 있었다. 군주제적 관료제의 최고 적은 바로 불행한 여행자인 가난한 사람이었다. (249)

거지들을 적극 고발하도록 하기 위해 1547년에 왕은 사지가 멀쩡한 극빈자가 자의로 3일 동안 태만하게 보낸 것을 고발하면 그 극빈자는 고발자를 위해 2년간 무상으로 일을 해주도록 했다. (...) 모든 노마드들은 그렇게 해서 정착민들의 노비 신세가 되었다. (263)

관료들은 여행자들과 타지에서 온 사상들에 대한 두려움에다 이제는 외국 상품에 대한 두려움까지 갖게 되었다. 한 국가 내에서 도시간 이동시 내는 입시세(入市稅)는 내린 반면, 유럽의 국가간 관세는 올랐다. (271)

17세기에는 주요한 혁신이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도망쳐서 야생동물이 되어버린 말들을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발견한 것이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말들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 많은 정착민 부족들이 평원으로 내려와서 열매 채취와 옥수수 경작을 포기하고 기마민이 되어 새로운 사육 방법을 고안해냈고, 말을 타고서 들소 사냥을 했다. 3천 년 전의 유라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들이 노마드들을 '만들어냈다.' (280)


그러니까 모든 것이 노마드 인디언들이건 아니건 간에 인디언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데 동원된 것이다. 인디언의 의식 절차, 인디언의 언어, 인디언의 춤, 인디언의 그림이 금지되었다. 모든 인디언은 그때부터 물건을 팔거나 가축 또는 기구를 사기 위해서는 서면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인디언들에게 영어와 개신교를 동시에 강요하였는데, 그 목적은 "인디언을 죽이고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1894년 인디언들에 관한 법은 인디언들에게 영어로 하는 교육을 부과하였다. 그렇지만 시민의 권리는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식민지 개척자들의 압력 하에 많은 보호구역들이 다시 해체되거나 축소되었다. (302)

또 어떤 백인들은 흑인들과 함께 다소간 자발적인 새로운 부류의 노마드를 탄생시켰다. 이들이 미국 사회를 저변에서 형성하게 되는 호보이다. 이 단어는 남북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864년에 생겨났다. 라틴어 'homo bonus(좋은 인간)'에서 왔거나 누구를 부를 때 쓰는 표현인 "Ho, boy!"에서 왔거나, 아니면 카우보이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세 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 (306)

제국의 경찰총장이던 푸세는 "반체제 인사, 다양한 주변인, 동맹 노동자, 불복종자, 탈영병"을 감시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이주 노동자들의 모든 이동을 내부 여권 체계에 따르게 만들었다. 이것이 신분증의 시작이었으며, 경제 생활을 조절하는 데 쓰이기도 한 '종이로 된 정체성'의 시작이기도 했다. (311)

UN과 그 밖의 국제기구들은 노마드 민족들의 생존권을 거부하기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 있다. 한편, UN이 정한 어휘에 따르면, 땅에 연결된 원주민은 '토착민'으로 지칭되었고, 노마드 생활 때문이건 망명 때문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소수민족'이라 규정되었다. 그러니까 노마드들은 결코 원주민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400~401)

상업적 노마디즘은 에고이즘의 고조, 자신에 대한 예찬, 개인적 성공에 대한 집착, 고독한 즐거움에 대한 찬양, 모든 이타주의적 목표의 거부, 나와 이웃의 자폐증, 모든 집단적 책임감의 실천에 대한 거부로 나아가게 된다. (410)

인류는 이제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비자발적 노마드 또한 '인프라노마드'로서 대물림에 의한 노마드(원시부족의 마지막 후손들)와 어쩔 수 없이 노마드가 된 이들(주거지가 없는 사람, 이주 노동자, 정치 망명객, 경제 관련 추방자, 트럭운전수나 외판원과 같은 이동 근로자)이 포함된다. 
두 번째 부류는 정착민으로서 농민, 상인, 공무원, 엔지니어, 의사, 교사, 한 곳에 소속된 노동자, 장인, 기술자, 은퇴자, 어린이 등이다. 
세 번째 부류는 자발적 노마드로서 이 또한 '하이퍼노마드(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고위 간부, 연구원, 음악가, 통역사, 안무가, 연극배우, 연극 연출가 또는 영화감독, 짐 없는 여행자)'와 유희적 노마드(관광객, 운동선수, 게이머)로 나뉘는데, 유희적 노마드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한 때 포함될 수 있는 부류이다. (418)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프랑스를 선두로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모든 국가들과 더불어 노력해야 하며 이동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동시에 확실하게 젊어지기 위한 방법들을 구비하고, 많은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며, 마약과 비만에 대항해서 정면 투쟁을 벌이고, 노동, 노력, 호기심, 이동성에 대한 의욕을 되찾도록 고무 격려해야 할 것이다. (462)

이슬람교의 탄생 이래로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또는 군사적 수단에 의해 광범위한 영토에서 권력을 잡으려 할 때마다 이슬람은 실패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종교적으로 보자면,
 이슬람은 상호 적대적인 무수히 많은 분파들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이슬람 관료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부패와 태만, 혁신이나 모험심을 고무시키지 못하는 무능력, 법의 지배에 대한 인식 결여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슬람 영향권 안에서 여자들에 대한 탄압, 독재, 불관용, 엘리트들의 추방이 창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군사적으로 보면, 일부 이슬란 점사들의 세계적 계획은 마지막에 가서는 언제나 민족주의적인 요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489~490)

그 반대로 트랜스휴먼의 의무는 가능한 한 가볍게 살고, 재산 때문에 거추장스러워지지도 않으며, 사상, 경험, 지식, 관계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축적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독재나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랜스휴먼은 더 이상 불안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계와 인류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는 그저 용익권만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97)

독서565_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_자크 아탈리_2008_웅진지식하우스(220512)



■ 저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1943~)

1943년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소수정예 엘리트들이 모이는 그랑제콜에서 공학, 토목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그 뒤 프랑스 최고 지도자 양성 기관인 국립 행정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석학 아탈리는 정치 경제 인문 예술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와 저작으로 '파우스트에게 가장 근접한 유럽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저작은 학문의 지형을 넓혔고 미래사회를 여는 예리한 통찰력은 새로운 화두를 생산해냈다. 특히, 20년 동안 천착해온 노마드에 관한 연구는 세계사의 지형을 뒤흔든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태초 인류는 여행자였다. 아탈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6천 년의 정착민 역사가 아닌 6백만 년 노마드의 역사에서 찾고자 했다. 불, 언어, 민주주의, 시장 등 끊임없는 질주와 생성을 통해 얻어낸 노마드의 발명품에 비하면 정착민의 것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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