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습관

[1061]지하생활자의 수기 Notes From Underground_19세기 혼란스런 러시아 상황을 반영한 지하인의 이야기

bandiburi 2025. 6. 3. 00:03

도스토예프스키의 책 《지하생활자의 수기 Notes From Underground》는 짧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관청에서 적은 봉급을 받으며 물리적인 자기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지하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 늘 그렇듯이 인물의 심리묘사가 많다. 
유배생활도 하고, 사형 직전에 살아났던 경험과 시대정신이 그의 작품에 녹아들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저자의 사색은 깊다. 
그래서 독자에게 어렵게 다가온다. 

러시아는 농노제도가 사라지고 여러 개혁과 반동이 뒤섞인 혼란의 시대였다. 
서양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등 새로운 사상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유입되는 시기였다.

주인공 '지하인'은 운 좋게도 유산을 물려받아 집안에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그의 말과 행동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랬다 저랬다하며 심리적으로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특히 친구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돈을 빌려가며 송별회에 참석했던 사연은 저자의 심리를 보여준다. 

마음속으로 많은 공상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순응한다. 
송별회에서의 친구들의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지하인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주인공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일관성이 없다. 
인간은 선과 악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합리적인 듯하지만 감정에 휩싸여 비합리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혼란스러운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를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에 명확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독자들이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이라면 어떤 주인공을 세웠을까. 

아래는 책에서 인용한 문장과 짧은 소감이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 오직 그 때문에 관리 생활을 해왔지만, 작년에 먼 친척 한 사람이 6천 루블이라는 돈을 나한테 주도록 유언하고 죽었으므로 나는 즉시 사표를 내고 이 방구석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나는 전부터 이 방에 살고 있었지만, 이번엔 아주 여기에 틀어박히고 만 것이다. (9)

지하인의 직업과 직업을 그만둔 배경을 드러냈다. 
지하인은 유산을 받고 자신만의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같은 지하생활자들은 모두 입에다 재갈을 물려둘 필요가 있다고. 그들은 40년쯤 아무 소리 없이 지하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있지만, 만약에 세상에 뛰쳐나오는 날엔, 마치 둑이라도 끊어진 듯이 된 소리 안 된 소리 마구 지껄여댈 것이기 때문이다. (54)

은둔해 있는 지하인의 모습이다.
갈고닦은 성찰 속에서 생각이 정제된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지하인은 자신의 내면을 쏟아낸다. 

 

학교 동창은 페테르부르크에 여럿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나는 그 친구들과는 교제하지 않았을뿐더러 간혹 길에서 만나더라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지냈다. 내가 다른 관청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실은 그들과 어울리기가 싫어서, 화가 나는 나의 소년 시대와 아주 인연을 끊어버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87)

학교 동창들과도 교제를 하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지하인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도시인들의 삶은 친구와의 만남조차 없는 공허한 삶이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898

 

[단상]모내기와 쌀의 관계를 묻는 동료를 보며 드는 생각

주말을 맞아 아우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 2025년 모내기를 마쳤다. 과거보다 5월 초 차가운 날씨를 고려해 모가 충분히 자란 후에 하기 위해 평년보다 1주일을 늦췄다. 고령화와 농업 인구 감소에

bandiburi-life.tistory.com

 

우리가 모두 실생활에서 동떨어져 있어서 생활이란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들 정신적으로 절름발이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멀리 동떨어져버려서 때로는 '산 생활'에 대해 일종의 혐오를 느낄 지경이다. 그 때문에 '산 생활'을 상기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병이 고질화되어, 진짜 '산 생활'을 마치 무슨 힘든 노동이나 되는 것처럼 느끼며, 차라리 '소설식인' 생활 쪽이 좋다고 모두들 속으로 생각하게끔 되어버린 것이다. (191)

최근에 '모내기'가 뭔지를 모르는 직장동료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산업구조가 2차, 3차 산업으로 발전하며 사람들은 삶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졌다. 
진정한 삶은 자연에 가까워지는 삶이다. 
하지만 만들어지고 제단되어 주어지는 허구의 삶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세대가 등장한다. 

 

여기서는 사상과 사상, 사상과 심리가 서로 엇갈리고 때로는 서로 부정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복잡한 내부세계의 끝없는 심연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에 있어서 선명한 분계선을 이루는 것으로, 이 작품이 발표된 1864년까지 그는 단지 러시아 문단의 일류 작가에 지나지 않았지만, 1864년 이후의 그는 인류를 위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세계적 천재가 된 것이다. (198)


독서습관1061_지하생활자의 수기_도스토예프스키_1998_문예출판사(250602)


■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 소설가.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 비평가 벨린스키의 격찬을 받으면서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는 울창한 원시림, 깊은 동굴과 심연으로 이루어진 신비경이다. 그의 병적인 성격과 그 포착하기 힘든 실존주의적 발상, 비길 데 없이 강력한 독창적인 사상, 그리고 몸소 상처를 입으면서 탈출해 나온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복잡다단한 정신 상태, 이러한 것들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는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는 모순된 두 개의 요소, 선성과 잔인성, 신성과 악마성, 우월감과 열등감 등 이른바 이중인격을 발견하고, 온갖 방면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데 불굴의 노력을 기울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와 같은 인간 내부의 상호모순하는 요소 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기초로 하여 커다란 사회, 윤리, 철학의 문제로 독자적인 사색을 확대함으로써《죄와 벌》《백치》《악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새로운 사상소설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