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碑銘을 찾아서 : 京城 쇼우와 62년_이토 히로부미가 살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다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지 않고 승리해 오늘날까지 한반도를 지배했다면'이라는 가정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런 가정을 전제로 한 소설이 『비명을 찾아서』다. 첫 페이지를 넘기며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까 궁금했다. 저자 복거일이 이런 가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런 유쾌하지 않은 가정의 소설을 창작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하는 책이다.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승승장구하는 주인공 조선인 기노시타 히데요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흘러가는가 싶은 시점에 이야기는 갑자기 주인공이 조선의 말과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전환된다. 조선의 말과 역사를 지우고 오로지 일본인으로 살기를 원하는 일본 정부다. 조선인들이 뿌리를 찾는 것을 엄격히 관리한다. 주인공 히데요는 일본에서 돌아오는 입국장에서 잡힌다. 그리고 험난한 인생길이 시작된다.
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현실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자연스럽게 내쉬었다. 일본의 내지인은 한반도의 조선인들을 보이지 않게 차별한다. 조선인은 하류인간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지속된다. 우리의 말과 글이 사라지고, 우리의 역사가 은폐되는 사회다. 조선의 역사와 언어를 찾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다. 공식적으로 하나의 국가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춰보면 내지인과 조선인의 상하관계가 견고해졌다.
소설을 다 읽었지만 기분이 고약했다. 한일합방 직후에 한반도의 국민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공감되었다. 45년의 기나긴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얼마나 혹독한 대우를 받았을지 눈에 선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국민들 간에 반목과 질시, 갈등을 조장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특정 집단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이 더 나아지는 협력과 토론의 사회로 나아가야겠다. 조선말기에 이 나라에서 있었던 모습은 결국 일본의 지배를 받는 망국의 길을 초래했다. 국가의 경제와 국방,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가야 한다.
개도국에서 성장한 세대와 선진국에서 성장한 세대가 융화를 이뤄야 한다. 과거를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비명을 찾아서』을 읽으며 끔찍한 상황을 간접 경험하며 국가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관 속에서 밝은 국가의 미래를 꿈꾼다.
『도우꼬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란 제목 아래에 '이름만 바꾸면 그 얘기는 당신에 관한 것이다. - 쿠인타스 호레이샤스 푸레카스'라는 명구銘句가 있었다. (70~71)
일본 역사에서 특이한 점들 가운데 하나는 민중 반란의 역할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본 역사를 통독한 외국인들이 흔히 지적하는 점이다. 피지배 계급에 의한 사회적 변혁의 시도는 역사를 형성한 주요한 조류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조류가 크게 일렁였을 때, 그것은 민란이라고 역사에 기록된 민중 반란의 형태를 갖게 되는 것이다. (88)
(...) 그리고 다른 조선인들을 외면하고서 살아온 것이다. 조선인의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의 문제는 모두의 힘으로 함께 풀어야 하는 것이다. (107)
하기야 요새 신문이 신문 같아야지. 전부 장삿속이니. 기사다운 기사는 하나도 싣지 못하면서, 하는 것마다 염치없는 것들뿐이니.. (112)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있었다는 신라라는 나라, 그 나라의 임금이었다는 박혁거세라는 사람,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박씨들, 그 세계(世系)를 적은 족보, 그리고 사노 히사이찌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는 없었다는 민중 반란인 <동학란(東學亂)> - 무지와 왜곡의 짙은 안개 너머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조선이라는 커다란 산봉우리는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두려움과 서글픔과 반가움으로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129)
'그러나 조선인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 어째서 떳떳치 못하단 말인가? 자신의 역사적 유산을 만나는 일이 어째서 남이 알까 두려워해야 할 일이란 말인가? 내지인들에게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일이 중요하고 칭찬받는 일이라면, 똑같이 조선인들에겐 조선의 역사와 전통을 캐는 일이 중요하고 칭찬받을 일이 아닌가? 지금의 내 마음이 옳은 상태다. 어렵게 만난 나의 뿌리 한 가닥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로는.' 그는 불안한 마음을 아주 떨쳐 버릴 수 없는 자신에게 이르고, 책장을 넘겼다. (136)
꿈이 있어야 비로소 현실이 보인다는 거지. 현실이란 것은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어떤 관점을 가졌을 때 비로소 보인다는 거야. 그리고 그 관점을 부여해 주는 것이 꿈이라는 거지. (317)
한 사람이 자기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넓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실체가 바뀌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쉬운 일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라고 믿었던 실체의 상당한 부분이 허구였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큰 충격일 터였다. 그리고 그 허구로 밝혀진 것을 대신해서 채울 실체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찾아야 했다. (353~354)
"우리 사상보국연맹은 조선의 일반 대중이 조선이라는 것을 잊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 조그만 소시민적 행복을 추구하는 조선 반도의 선량한 필부필부들에게 그 무서운 지식이 퍼져 그들의 행복을 깨뜨리지 못하도록......, 분명 우리는 그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위해 하는 짓입니다. 우리는 가야마 선생의 본을 받아서 조선 대중에게서 위험한 지식의 불을 빼앗아 감추는 '불행한 푸로메떼우스'들인 것입니다." 하꾸야마가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433)
독서습관 1011_ 碑銘을 찾아서 : 京城 쇼우와 62년 _복거일_1987_문학과지성사(250217)
■ 저자: 복거일
1946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고 대전상고를 거쳐 1967년 성루대 상대를 졸업했다. 이후 16년 동안 은행 · 제조회사
· 무역회사 · 연구소 등에 근무했으며 시를 쓰기도 해서 『현대문학』에 1회 추천을 받기도 했다. 1983년, 직장을 그만두고 창작에만 전념키로 작정을 한 그는 4년에 걸쳐 한 권의 독창적인 소설을 집필했는데, 그것이 이 『碑銘을 찾아서 : 京城 쇼우와 62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