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7]픽션들_보르헤스의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로 작품 세계 이해
보르헤스의 <픽션들>은 17개의 단편소설을 모은 책이다.
서사 중심의 일반적인 소설과는 달리 어렵다.
17개의 소설이 각각 개별적인 색깔을 가진다.
제목에 실제처럼 언급되는 작가의 이름은 허구다.
여기서 독자는 한 번 휘청거린다. 뭐지?
소설 속에는 픽션과 논픽션이 뒤섞여 있어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다.
소설을 읽은 후 작가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드러나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유럽, 인도 등 전 세계를 배경이 확장된다.
서사가 모호해서 읽고 있지만 어느 순간 길을 잃는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난해하다.
<픽션들>을 통해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에 첫 발을 디뎠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소설 속에 모든 것을 흡수할 수는 없다.
다른 책에서 보르헤스의 문장이 인용된다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책의 마지막에는 작품해설이 있다.
17편의 단편소설을 읽고 지쳐있는 독자에게 보르헤스의 작품세계를 깔끔하게 정리해 제공한다.
해설도 쉽지는 않지만, 마지막 소설을 지나온 독자가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짧지만 어려웠던 <픽션들>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과 느낌을 아래에 포스팅한다.
역사는 진리의 '어머니'이다. 이런 생각은 어마어마하게 놀라운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와 동시대 사람인 메나르는 역사를 현실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현실의 기원으로 정의한다. 메나르에게 역사적 진실이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행위이다. (63~64)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적 진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이 일어났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역사적 진실일까. 여기에 역사의 함정이 있다. 승리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
『픽션들』은 196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 본격적으로 수용되어 영향을 끼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뒤늦게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문단을 지배했던 민중 문학은 보르헤스를 '엘리트 문학'이며 민중성과 괴리를 두고 있다고 성급하게 판단하면서 '수용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보여 주는 문학 혁명을 감지하지 못한 채, 단지 토착적 혹은 편협한 민족주의적 문화 자산에만 관심을 두면서,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엘리트 문학'으로 분류한 탓이다.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정치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소개되면서 보르헤스는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고, 이제 『픽션들』 은 문학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치면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히게 되었다. (230)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보르헤스의 소설이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데 30년 가까이 걸렸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 국민들이 문화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덕분이다.
이렇게 출처가 의심스런 작품이나 거짓으로 다른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보르헤스 놀이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 역시 비평의 허구화를 통해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게 하는 메타 픽션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243)
어려운 용어들이 많다. '메타 픽션'은 무엇일까. 구글링 결과 이는 픽션임을 독자에게 의도적으로 알리는 것을 말하며 이를 통해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한다. 문학을 읽고 평가를 하는 역할은 또 다른 깊이가 있다.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알레고리, 메타포 등의 아리송한 용어들은 그들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독서습관 997_픽션들_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_2019_민음사(250120)
■ 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정규 교육 대신 영국계 외할머니와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놀라운 언어적 재능을 보였다. 1919년 스페인으로 이주, 전위 문예 운동인 '최후주의'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와 카사레스, 오캄포 등과 문예지 《남쪽》을 창간, 아르헨티나 문단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
아버지의 죽음과 본인의 큰 부상을 겪은 후 재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의 단편소설들을 집필, 『픽션들』(1944)과
『알레프』(1949)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문학의 본질과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천착했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을 역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으며 세르반테스 상, 아르헨티나 국민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67년 66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결혼했으나 삼 년 만에 이호, 1986년 재혼하고 그해 6월 제네바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