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습관

[1065]아주 평범한 사람들Ordinary Men_101예비경찰대대 분석으로 학살자의 입장에서 유대인 홀로코스트 분석

bandiburi 2025. 6. 12. 05:33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실제 집행한 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시선을 던져 심층 분석함으로써 홀로코스트 연구사에 일획을 그은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의 대표작이다. 이 책이 출간(1992년 초판 출간)되자 학계의 뜨거운 찬사가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일상사적 접근, 경찰대대에 대한 최초의 심층 연구, 신중하면서 온건한 구조주의적 테제, 브라우닝은 학살자들의 학살 참여 동기, 심적 동요, 고통과 적응 과정을 그들이 처했던 여러 상황들과 연결시키며 홀로코스트라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비극적 사건에 다가간다. - 옮긴이의 말 中 (425)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정도의 정보는 익히 알고 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이 이어졌다. 
관련된 수많은 책이 출간되었고, 영화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자료들은 피해자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환경이었다. 

 

이 책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가해자인 독일인 경찰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독일경찰은 생사여탈권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히틀러와 힘러의 명령을 받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해야 하는 경찰의 입장은 달랐다.
끊임없이 유대인을 이송하고, 사살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폴란드 지역 유대인 학살 지도 (출처: PICRYL)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 비록 경찰이지만 치안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던 사람들에게 '유대인 학살'이 주어진 거다. 
전쟁이라는 환경이라지만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일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길 수밖에 없다. 
일부는 사살 행위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료들을 의식해서 명령을 수행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살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면서 즐기는 사람도 나온다. 
도덕적 불감증에 이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동안 학살의 책임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정작 학살을 수행한 당사자들에 대한 연구는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브라우닝의 연구는 선구적이다. 또한 학살을 위해 특별히 선발된 특수부대가 아닌 평범한 사회적 이력을 가진 예비경찰대대 대원들에 관한 치밀한 미시사적 연구 성과는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사건에 접근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수많은 후속 연구를 자극하고 있다. - 옮긴이의 말 中 (433)

 

총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제거하는데 한계에 다다르자 고안해 낸 기술적 방법이 '죽음의 수용소'다. 
처음부터 가스를 이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101예비경찰대대를 중심으로 유대인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는 상황이 반복된다. 
독자로서 계속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의 행렬만 봐도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소중한 생명들이 히틀러라는 잘못된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사라져 갔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었다. 
연약한 환자, 노인, 갓난아이들은 거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먼저 사살되었다. 
독일인들은 전후에 이러한 상황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재판하고 심판했다. 

 

세계사적으로 독일의 유대인 학살 못지않은 대량학살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유대인 학살의 잔혹함과 그 이후 전범재판의 일부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620

 

[영화]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_프란시스코 복스Francisco Boix 실화

사람은 망각의 존재이기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한다. 는 다시 한번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포로수용소를 얼마나 참혹하게 운영했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다. 유대인들을 가

bandiburi-life.tistory.com

 


고든 J. 호르비츠Gordon J. Horwitz는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에 비견할 만큼 악명 높았던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 Mauthausen 수용소와 인근 마을의 일상적 관계를 샅샅이 파헤쳤다. 그가 그려낸 그림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의 나치 학살자들은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매우 편안하게 느꼈다. (...) 강제수용소 인근 마을 사람들은 수용소에 필요한 물자와 용역을 제공하고, 수용소 친위대 대원과 가족들에게 음식과 술을 팔았다. - 옮긴이의 말 中 (435~436)

 

101예배경찰대대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함부르크 검찰의 지휘 아래 10년(1962~1972) 동안 계속된 기나긴 과정이었다. 서독에서 나치 범죄를 추적, 기소하는 데 가장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기관 중 하나로 정평이 났던 함부르크 검찰은 아직 이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료 열람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18)

 

러시아 침공에 참가할 모든 독일군과 경찰 조직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대원들에게 구두로 전달되어야 하는 몇 가지 명령을 공개했다. 첫 번째가 악명 높은 "인민위원 명령"인데, 이에 따르면 반독일적 행태가 의심되는 군과 민간행정기관 내부의 모든 공산당 간부들(인민위원)은 전쟁포로로 취급하지 말고 사살해야 한다. 두 번째 명령은 이른바 "바르바로사 포고령"이었다. 이 포고령은 러시아 민간인에 대한 독일군의 작전 전체를 군사재판권으로부터 면제해주고 지역 전체에 대한 "집단적 보복조치"를 명시적으로 허용했다. 이는 사실상 러시아 민간인에 대한 "사살 허가증"과 같았다. (41)

 

서두에 언급했듯이 장인匠人의 가족도 사살에서 제외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거의 모든 가정에서 몇 명씩은 사라진 듯합니다. 도처에서 어느 가정에서는 장인이, 다른 가정에서는 부인이, 또 다른 가정에는 자녀가 사라지고 없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의 모든 가정이 풍비박산 나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장인이 의욕을 가지고 책임 있게 일할지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56)

Birkenau in Poland (출처: PICRYL)

그들(라트비아인)은 유대인을 특히 증오한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해방 당시부터 오늘까지 이들 기생충과 같은 유대인의 박멸에 매우 열렬히 참가해왔다. 그러나 본인이 라트비아인 역무원들로부터 특히 확인할 수 있었듯이, 그들은 왜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본국에서 처치하지 않고 라트비아로 보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85)

 

러시아 유대인 학살이 시작된 후인 1941년 여름 어느 날, 힘러는 루블린의 친위대 · 경찰 지도자인 오딜로 글로보츠니크에게 유럽 유대인 학살에 관한 히틀러의 심중을 털어놓았다. 나아가 그에게 "유럽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 즉 폴란드 유대인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총독령 유대인의 제거에 관한 책임을 위임했다. 그는 여기서 유럽 유대인 학살에는 사살조 방식이 사용되었던 러시아 유대인의 처리 때와는 다른 방식, 즉 훨씬 효과적이고 덜 공개적이며 학살 집행자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덜 주는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고안된 조직적이고 기술적인 해결방안이 '죽음의 수용소'였다. (91)

 

나치즘은 이러한 인간적 본성을 강력하게 부정하며 극복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그들이 받들었던 정권의 본질과 자신들의 느낌 사이에서 어떤 모순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이들 경찰이 너무 심약해서 사살을 계속하지 못했다는 것이 대대의 작전상 '효율성'이나 사기 측면에서 당연히 문제를 초래했지만, 이러한 행동은 본질적으로 경찰의 기본적인 기강이나 정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다. (125~126)

 

이미 한 번 살인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 번째에서는 첫 번째와 같은 정신적 충격을 겪지 않은 것이다. 다른 많은 일들처럼 살인도 적응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점에서 워마지 학살은 유제푸프의 경우와 뚜렷하게 차이를 보인다. 이번 경우 가해자들은 첫 번째 경우처럼 트라프의 제안에 따라 그들 각자가 짊어져야 했던 '선택의 고통' 앞에 서지 않았다. 이것도 그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부담을 줄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이번에는 사살에 가담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대원들이 물러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141)

폴란드 Sanok의 독일군 병사 (출처: Wikemedia Commons)

분명히 유제푸프에서 학살이 자행되는 내내 눈물을 쏟았으며, 폴란드인들에 대한 무분별한 학살 앞에서 뒷걸음쳤던 대원들이 이젠 주어진 보복 살인 임무의 할당량을 초과하는 학살을 집행하면서도 더이상 어떤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다. (163)

 

"유대인 사냥"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한 단계가 아니라, 찾아낼 수 있는 한 최후의 유대인까지도 죽이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과 의도가 드러난 실존적인 조건이었다. (205)

 

경찰대대 수사는 대부분의 경우 기소 단계에 도달하지 조차 못했다. 그리고 재판에 회부된 몇 안 되는 사례에서 유죄 판결에 이른 경우는 거의 없다. 이와 비교해보면 101예비경찰대대 재판은 독일 재판부가 경찰대대의 활동에 대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시범적 청산을 이룩한 드문 성공 사례이다. (224)

 

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 제복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 독일 민간인들조차 폴란드인들을 대할 때는 '지배인종master race'으로 행동하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어 폴란드인들은 시내에서 인도를 걸어가다 맞은편에서 독일인들이 오면 비켜서야 했으며, 독일인들이 상점에 들어오면 폴란드인 손님들은 나가야 했다. (229)

 

독일인들의 증언에서 잘못된 점은 그들이 가졌던 여러 겹으로 왜곡된 시선이다. 경찰들은 유대인들을 도운 폴란드인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독일인에 의해 처형된 폴란드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했다. 그리고 일부 폴란드인들이 "배반"과 밀고를 하도록 선동한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다는 사실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242)

 

반면 유대인 학살과 강제이송 및 경비에서 작업 분담이 이루어지고 학살 행위가 죽음의 수용소로 넘겨지자, 대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유대인 학살에서 여전히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일말의 책임 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또한 직접적인 감시 없이 수행된 밀그램의 실험에서처럼 많은 경찰대원들은 직접 감시받지 않을 때에는 명령에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271~272)

 

요약해 보자.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은 기타 독일 사회와 마찬가지로 인종주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선전의 홍수에 휩싸여 있었다. 나아가 치안경찰은 기초 교육에서 뿐 아니라 단위부대 차원에서도 지속적인 세뇌 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그칠 줄 모르는 선전의 홍수는 독일인이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전반적인 생각과 유대인에 대한 "확실한 반감"을 크게 강화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283)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그의 마지막 저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The Drowned and The Saved》에 "회색지대"라고 제목을 붙인 글을 한 편 포함시켰다. <회색지대>는 아마 그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성찰한 글 가운데 가장 심오하면서도 인간에 대해 깊이 근심하게 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레비는 희생자와 가해자를 명백히 구별하려는 우리의 욕구가 사실 당연하지만, 죽음의 수용소의 역사는 "희생자와 가해자 두 진영으로 축소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 "나치 체제는 정반대로 희생자들을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시킨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비슷한 비인간으로 만든다." (287)

 

커쇼는 다음과 같이 기억할 만한 문장으로 같은 사실을 강조했다. "아우슈비츠로 나아가는 길은 증오에 의해 건설되었지만 무관심으로 포장되었다." (309)


독서습관1065_아주 평범한 사람들_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_2023_책과함께(250612)


■ 저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1944년 태어나 1966년 오벌린 칼리지를 졸업하고 1975년 매디슨 위스콘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1999년까지 퍼시픽 루터란 대학에서,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현재 명예교수)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며 대량학살 genocide, 홀로코스트, 독일 현대사 등을 연구해왔다. 현재 워싱턴 대학의 객원 교수로 지내고 있으며,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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