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빅 슬립 Big Sleep_미국 대공황 시기 탐정 필립 말로가 펼치는 추리소설
이 인상적인 글을 읽고 비로소 내가 챈들러와 사설탐정 필립 말로에게 반해버린 이유 하나를 깨달았다. 챈들러의 작품세계에서 스토리는 그릇에 불과하다. 독자가 줄거리보다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등장인물의 심리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다움에 관하여 사색하도록 만드는 힘, 그것이 챈들러의 매력이고 필립 말로의 매력이다. (298) - 옮긴이의 말 中
추리소설이 대개 그렇듯이 이 소설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이 책은 이야기 전개보다는 디테일한 인물과 상황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일본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같이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주인공 사설탐정 필립 말로의 시각에서 주변을 관찰한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긴 것처럼 세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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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용의자 X의 헌신_수학 천재 이시가미가 살아갈 의미를 준 하나오카 모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마지막의 극적인 반전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추리소설이다. '밀리의 서재'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이 소설을 만났다. 토요일 오전에 여유 있게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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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가 스턴우드 장군에게 막내딸의 빚 문제에 대한 처리와 첫째 딸의 남편이자 자신에게 친절했던 리건이란 인물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대해 확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말로가 게이거란 인물을 추적하며 소설은 추적, 죽음, 추적, 죽음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반전을 보여주며 추리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가장 큰 반전은 가장 말미에 스턴우드의 막내딸인 카먼이 말로에게 사격법을 알려달라고 하고는 그를 살해하려 했던 장면이다.
결국 이로 인해 말로는 카먼과 리건의 죽음과의 관계를 파악한다.
이 소설을 1930년대 미국의 범죄집단과 경찰의 유착, 금주법, 사설탐정의 성행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추리소설가마다 각자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아래는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문장과 짧은 소감을 포스팅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병마개를 비틀어 따고 커피에 위스키를 섞었다. "이 동네 경찰은 정말 대단하다니까. 금주법 시대에 에디 마스네 도박장은 줄곧 나이트클럽이었는데 밤마다 정복경찰 두 명이 로비를 지켜줬소. 손님들이 클럽 안에서 술을 사 마시는 게 아니라 놀래 가지고 들어오는 걸 막으려고." (177)
이 소설은 1939년에 최초로 출간되었다.
미국의 금주법은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시행되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일당 이십오 달러 받으면서 그런 일을 다 감수하는 놈이고, 가능하다면 병들고 낙심한 노인의 핏줄 속에 얼마 안 남은 자존심이나마 조금은 지켜주고 싶었소. 노인이 물려준 피는 결코 독이 아니라고, 두 딸이 좀 제멋대로지만 요즘은 착한 여자들도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딸내미들이 무슨 괴물이나 살인자는 아니라고 믿게 해주고 싶었단 말이오. 그랬는데 결국 개새끼라는 말을 듣게 되는군.(...) (275~276)
사설탐정 필립 말로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다.
자신에게 의뢰한 스턴우드 장군이 죽음에 가까운 건강 상태지만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는 말로다.
의뢰한 역할을 수행하며 두 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지만 노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스턴우드 장군과 그의 두 딸이 살아가는 행태를 보며 부자가 아니어도 부모와 자식 간에 화목한 게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선 필립 말로의 움직임에 시선을 뺏긴다. 그리하여 그 움직임을 쫓는 사이 소설의 율동에 점차 빨려들어가고, 이윽고 줄거리의 정합성 따위 (아마) 딱히 신경쓰지 않게 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필립 말로라는 인물이 발휘하는 정합성인 셈이다. 그리고 챈들러 특유의 매력적인 문체가 소설의 강인한 율동을 만들어간다. (289)
일본의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독자를 스토리에 빠져들게 한다.
반면에 챈들러의 글은 마치 탐정 말로의 세밀한 관찰력을 보여주든 문장과 문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특정한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많다.
그는 그 자유를 손에 넣고, 감에 의지하고 개인의 긍지에 의지하여, 상황의 '부드러운 부분'을 기죽지 않고 찔러댄다. 말로는 스턴우드 장군에게 말한다. "경찰이 뭘 자꾸 빠뜨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내버려두기만 하면 잘들 하죠. 그런데도 뭔가 빠뜨렸다면 대개는 좀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들이기 마련입니다." (294)
말로는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며 스턴우드 장군과 경찰, 불법으로 돈을 버는 자들 간의 관계를 파악한다.
소설 속에는 말로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가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은 없다.
독서습관1056_빅 슬립_레이먼드 챈들러_2020_영신사(250517)
■ 저자: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1888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후 1900년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런던에서 덜위치 칼리지를 졸업하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언어를 공부한 다음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 1907년 시험에 합격해 해군성에 들어갔으나 반년 만에 그만두고 나와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했다.
1912년 미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이후 챈들러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다수 집필했다.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돌아와 여러 직업을 가졌다가 석유 회사에 정착했으나, 1932년 음주벽을 이유로 십 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1933년 펄프잡지에 『협박범은 쏘지 않는다』를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빅 슬립』『안녕, 내 사랑』『기나긴 이별』등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필립 말로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소설을 발표했다. 영화 시나리오 각색 등 다른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54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또다시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1959년 폐렴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