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틴 에덴_두 연인의 사랑과 배신 속 에덴의 결단
이토록 나 자신을 주인공에 이입하며 읽은 책은 드물다. 마틴 에덴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알아가는 건 정말 흥미로웠다. 책은 20대 초반의 아주 짧은 기간만을 다루고 있지만, 마치 파란만장한 청소년기를 지나 성숙해지는 중년기, 끝으론 노년기를 거쳐 일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의 전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가 단순히 힘자랑 하는 동네 건달이었음에도 부르주아 계층 연인 루스를 만나고, 사랑을 깨치고, 그 과정에서 독서와 글쓰기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땐 나 역시 건전해지고 함께 성장한다. 마틴 에덴은 ‘평범함’과 다른 길을 걸었다. 루스의 뜻대로 학교에 가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대학을 졸업하여 사업가로서 성공할 줄 알았다. 그리고 계층의 장벽을 넘어선 사랑을 결혼으로써 증명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너무나 깊고 심대해서, 다음 행보를 알 길이 없었다.
마틴 에덴은 글로 성공하는 길을 택했다. 모두가, 심지어 사랑하는 여자친구조차 그 길은 희망이 없다고 봤다. 모두 그가 변변한 직업을 얻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공을 확신했기에 빈털터리가 되어도 잡지사와 신문사에 원고를 부칠 우표 값은 꼭 남겨두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자신의 글이 반드시 성공할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마틴 에덴이 그토록 동경했던 부르주아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 났다. 그들은, 군중은, 그가 작가로서 성공하자 명성에 편승하려고 득달같이 달라붙었다. 빈털터리 시절 매몰차게 거절한 원고는 잊었다는 듯이, 그의 명성을 알게 된 편집자들은 비싼 값을 치러서라도 그의 원고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루스 역시 그가 명예를 회복하자마자 사랑을 노래한다. 결국 마틴이 성공하기 전과 후로 갈라지는 그들의 반응은 마틴을 황당하게 만든다.
마틴이 루스에 대한 사랑을 잃은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또한 사랑에 대한 그의 관점 역시 몹시 공감이 된다. 마틴에게 사랑이란 고귀한 것이고 주변의 평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반면 그녀는 주변인들의 눈치를 심하게 봤다. ‘루스’라는 사람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책을 읽고 수면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스스로 작가 수업을 한 마틴이 가장 외롭고 비참할 시기에, 그녀는 그의 원고보단 지위를 더 신경 썼다.
마틴은 결국 자살을 택했다. 그가 존경하던 친구이자 그 시대 최고의 시라고 칭송받을지도 몰랐던 ‘하루살이’ 작가, 브리스덴처럼. 바다에 빠져 허우적댈 때 느껴지는 고통조차 삶의 마지막 한 방이라고 여겼다. 그는 삶에 진절머리가 난 것이다.
그가 스펜서주의였던 게 그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화론을 받아들였고 이를 사회와 인간에 적용하려 했다. 또한 사회주의자들을 ‘노예’라 일컬었다. 성장하길 거부하고 다 함께 몰락하는 노예라고 봤다. 극단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마틴의 관점엔 동감하는 편이다. 게다가 그 시절,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마틴 에덴의 입장에선 적자생존의 세계는 더 노골적이었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는지는 한 사람의 운명을 쉽게 결정한다고 본다. 개인이 앞으로 무슨 선택을 하든 태생은 그를 쉽게 옭아맨다. 거기서 사회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판가름 난다. 물론 마틴 에덴처럼 태생과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우린 그걸 개천에서 용 난다고 한다). 그러나 태생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당장 돈을 벌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책을 읽고 나서 스펜서주의, 즉, 사회진화론에 대해 간략히 알아봤다. 교육 면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경험을 통한 학습을 중시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론을 인간과 사회에 무작정 대입한 느낌이 영 석연치 않다. 특히 식민지 확대와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의 근거가 된 이론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틴 에덴이 마음을 다잡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새로운 사상에 눈을 뜬다면 그는 삶을 계속 살았을까? 그렇다면 그 사상의 내용은 어떠할까? 아니면 ‘외로움’이 문제인 것이었을까?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건 쓸쓸하다.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고독하다. 마틴은 책으로 많은 걸 배웠지만 그만큼 더 외로워졌던 것 같다.
알콩달콩 연애소설을 기대했지만 이 책은 그 기대를 완벽히 저버렸다(책 표지만 봤을 땐 루스와 잘 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책을 읽는 건 재밌다. 영화로 나왔다는데 꼭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