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독서습관484-②_분배의 정의와 청년 세대를 위한 정당한 권리행사_왜 분노해야 하는가_장하성_2018_헤이북스(211126)

bandiburi 2021. 11. 27. 13:08

한국에서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전문가인 작가의 힘을 빌어 현재를 보는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불완전한 현실, 불평등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재벌 대기업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조장되는 사회를 경계한다. 재벌가의 비리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재벌에 굽신거리는 정치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한다.


대부분의 현실은 불완전한 경쟁이 펼쳐지는 불완전한 시장이다. 따라서 가격과 분배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는 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중략) 소수의 대기업이 모든 업종에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시장구조와, 갑과 을의 종속 관계로 묶여 있는 기업 관계에서 하청업자의 공급 가격이 경쟁적으로 결정되었고, 그러한 결과가 효율적인 분배를 결정했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사람은 한국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외계인일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시장'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 정한 것이다. (291~292)

장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분할된 경제적 불평등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불평등으로 구조화되고 고착화된다고 했다. 루소는 사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고착화되면서 '가진 자들은 본성적으로 타고난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이 약화되고, 갖지 못한 자들은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정의롭지 못한 상태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 노예 상태가 된다'고 했다. 루소는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들의 가진 것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약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명분과 자기를 방어할 충분한 힘(권력)'을 갖기 위한 '교묘한 계획'으로 사회와 법률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303~304)

 

장자크 루소는 경제적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가난한 자들이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노예와 같은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고 했다. 가진 자들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교묘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낸다. 현재의 법과 제도가 전경련과 같은 이익단체의 입김을 많이 받고 있고, 언론은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서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정치 외면은 악순환의 반복만 부를 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현자' 정치인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선택은 주어진 대상에서 할 수밖에 없다. 최선의 선택을 할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다면 차선 또는 차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의 정당들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어버린 한국 정치가 혐오스러워도 결국은 국민의 정치 참여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세대에게 희망이 없는 한국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현실적인 방안은 '기껏 정치'가 아니라 '그래도 정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417)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축재의 모습은 국민들을 절망하게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올바른 대표를 뽑고 청년세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라를 위해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이 가진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표에 민감하다는 부분을 일반 국민들이 깨닫고 표로 그들을 심판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취해야겠다. 

 

어느 청년의 경우도 높은 노동소득을 받아 고소득층이지만, 아직 주택이나 금융자산과 같은 재산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상속받지 못했다면 부유층이라 할 수 없다. 이처럼 소득과 재산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과 재산 불평등을 구분해서 보는 것이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 상황이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199페이지)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 집이 주거의 목적인 이상 아무리 비싼 집이더라도 소득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보통 사람의 삶을 꾸리는 것은 소득이지 재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자산이나 실물자산을 보유한 초부유층의 경우에는 재산을 처분해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지만 거주용 주택이 실물자산의 거의 대부분인 대다수 가계의 경우에 집을 팔아서 살림을 꾸리는 것은 최후의 선택이다. (214)

 

가계소득 중에서 가계 구성원이 직접 벌어들이는 소득을 시장소득이라고 하며, 다른 곳으로부터 지원받은 소득을 이전소득이라고 한다. 시장소득은 일해서 버는 임금인 노동소득, 이자와 배당 그리고 임대 수입과 같이 재산으로 버는 재산소득 그리고 자영업자로서 버는 소득이나 임금노동자가 부업으로 버는 소득인 사업소득 세 가지로 구성된다. 이전소득은 친지나 친구가 지원해주는 사적 이전소득과 공적연금, 기초노령연금과 같은 정부 보조금 등을 합한 공적 이전소득으로 구성된다. (233)

 

728x90

 

재계는 한국에 고용 유연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재계는 비정규직을 저임금 노동의 수단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해고를 쉽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노동자의 평균 근속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1년 미만 고용의 비중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5년 이상 고용의 비중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나라다. 또한 OECD 국가 중에서 노동이동성이 가장 높은 라라다. 노동자 세 명 중 한 명이 매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나라다. (284)

 

불평등을 완화하는 수단으로써 임금과 복지는 서로 보완적이다. 경쟁으로 작동하는 시장경제에서 불평등한 분배가 불가피한 결과이기 때문에 임금 분배만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그러기에 복지 지출을 통한 재분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임금 없는 복지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복지가 임금을 대체할 수 없다. 복지를 통한 재분배는 원천적 임금 분배가 해결하지 못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적 수단이다. 복지의 최우선은 실업자, 노약자, 빈곤층과 같은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다. (285)

 

"억압받는 사람들은 압제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그것을 끝내기 위해 어떤 합법적인 방법이 남아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억압은 지속적으로 커져갈 것이다. 시민의 권리와 국민적 자유가 점차 사라져가고 약자의 요구는 불온한 불평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정치가 공동의 이익을 지켜야 할 명예를 돈에 좌우되는 국민의 비중에 따라 제한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루소가 260년 전에 자본주의 꽃이 핀 오늘날의 상황을 마치 미리 본 것처럼 적고 있는 것이다. (306)

 

소득 불평등이 커질수록 경제성장이 낮아지는 이유를 IMF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평등이 커지면 저소득 가구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미래 소득을 만들어내는 기본이 되는 인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예를 들어, 교육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게 되면 가난한 아이들이 교육의 질이 낮은 학교에 다니게 되고, 대학에 갈 능력이 되지 않게 되며, 그러한 결과로 보다 평등한 경우보다 노동생산성이 낮아진다. 소득 불평등이 높은 나라일수록 부모의 수익이 자녀의 수익을 결정하는 보다 중요한 요인이 되어서 세대 간 이동성이 낮아진다. 또한 소득이 고소득층으로 집중되면, 부자는 중산층이나 저소득층보다 자신의 소득 중 더 작은 비중을 소비하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총수요를 줄일 수 있고, 궁극적으로 성장이 낮아지는 것이다.'(315~316)

 

은행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보다 은행 직원이 훨씬 더 높은 임금 상승을 누린 것은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딱히 다른 투자를 할 방안이 없어서 '마음 편하게' 은행에 예금을 한 덕분이다. 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리고, 그래서 나도 잘 살게 된다'기보다는 은행 직원이 잘살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345)

 

한국 경제의 재벌 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한 재벌들의 네거티브 파워는 계속될 것이고, '재벌 대기업이 잘되면 국민이 함께 잘살게 될 것이다'라는 허구도 계속될 것이다. (351)

 

 

꿈과 변화가 젊은 세대만의 전용물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는 항시 청년세대의 것이다. 20년 후면 지금의 20대는 40대가 되고, 30대는 50대가 되어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는 세대가 될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모든 세대가 동의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차이가 있다면, 그것의 무게 중심을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양보'하는 것이 낫다. 미래의 주인은 청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20년 후 한국은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하는가를 지금의 미래 세대가 자신들의 꿈으로 설계하고 변화시키면서 만들어가야 한다. (372)

 

청춘들의 '자기계발'은 '자기'를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라"는 말에서 "꿈이란 '갖고 싶은 직업', '들어가고 싶은 직장'을 의미한다. 꿈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토록 하향 조정된 덕분에 이 사회에서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을 이룬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아픔은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데에서 오는 아픔이 아니다. 그들의 아픔은 '나인 나'를 만들지 못했다거나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야만 하는 데에서 오는 갈등 때문도 아니다. '회사가 원하는 나'를 만들었는데, 회사가 나를 원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390~391)

 

그 이유는 미래가 기성세대의 것이 아니라 청년세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성세대는 세상을 바꿀 생각이 없다. 변화는 기성세대에게 불편한 것이다. 세상을 바꿀 현실적인 힘을 기득권 세력이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세상이 바뀌면 손해를 볼 것이기에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고 저항한다. 기성세대는 자기 자식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부릅뜨지만 자식 세대의 미래에는 눈감고 있다. (399~400)

 

'개미 방아(ants mill)'라는 현상이 있다. 군대 개미(army ant)는 수만 마리가 군집을 이루고 있어서 부족한 먹이를 찾아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하는 유목 개미다. 대부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 개미인데, 뒤따르는 개미는 앞서가는 개미가 남긴 페로몬(pheromone)의 자취를 따라간다. 그러다 맨 앞에 가는 개미가 방향을 잃고 원을 그리게 되면, 뒤 따르는 개미는 앞서가는 개미의 페로몬을 맡아 따라가고, 그 뒤의 개미는 또 바로 앞선 개미를 따라가면서 결과적으로 다 함께 집단적으로 원을 그리며 맴돌게 되는 것이다. (중략)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원을 돌다가 종말을 맞게 된다. (중략) 기성세대가 남긴 페로몬의 흔적을 지우고 청년세대 자신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스스로 맨 앞에 서서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니면 우리 모두 개미 방아에 빠지게 된다. (402~403)

 

정치인은 표를 먹고산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정치인은 표밭에서는 갓끈을 고쳐 맨다. 청년세대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도 궁극적으로 표의 힘이다. "자본주의는 기득권 세력, 부유층 그리고 재벌의 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중산층과 서민 소외층 그리고 중소기업의 편이다. 자본주의는 '돈'이라는 무기가 있지만,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투표'라는 무기가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삶을 영위한다. 그러기에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충돌할 때, 민주주의가 가진 '투표'의 무기가 작동되면 자본주의의 '돈'이라는 무기를 이길 수 있거나 적어도 제어할 수 있다." (423)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