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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35]아홉살 인생_어린이의 경험으로 얻는 삶의 지혜

by bandiburi 2024. 2. 3.

깡패 출신 아버지와 한쪽 눈을 화학약품으로 실명한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가난한 무허가 마을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집에 사는 주인공 백여민이다. 주인공 여민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학교와 마을, 그리고 마을과 학교 사이에 있는 숲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어린 주인공의 시각과 함께 현재의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국민의 주거 환경이 개선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설속의 주인공과 유사한 삶을 경험했다. 수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물지게로 우물에서 집까지 물을 운반해야 했다. 마을에서 학교를 가는 지름길은 산을 넘는 방법이었다. 이웃끼리 서로 잘 알고 지냈고 필요하면 도왔다. 나무가 귀한 시절이어서 산을 가진 주인은 산지기를 두고 지켰다. 지금은 더 이상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기에 산에 나무가 무성하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불쌍한 것은 아니야. 가난한 것은 그냥 가난한 거야. 가장 불쌍한 사람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57)

주인공 여민의 아버지는 기사도 정신을 가진 정의로운 사내였다. 베트남 전쟁을 막 경험한 뒤라 참전군인들고 베트콩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부모를 잃고 어린 자식들만 남겨진 경우도 있어 마을 공동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음으로 양으로 돌봐주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옆집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도 왕래가 없기에 모른 채 지낸다.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아홉 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다. 그래도 주인공 여민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말하는 게 어른스럽다. 1970년대에 아홉 살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올 것이다. 반면에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소설의 배경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가난했던 시절에 특히나 가난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제공하는 소설이다. 

윤희 누나는 예쁘게 웃었다. 그 여자는 내 미래 직업을 가장 일찍 예견해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내 꿈은 석수장이였다. (90)

여민이가 골방 속에 갇힌 청년을 편지를 전해주며 만난 윤희 누나다. 여민의 상담사 역할을 하며 그에게 소설가라는 직업을 알려준다. 자전적 소설처럼 읽히는 부분이다.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108)

어른의 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정리한다. 화를 낸다는 것이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워함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때 사람들에게 화를 덜 낼 수 있다. 

슬픔과 외로움과 가난과 불행의 정체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을 향해 애꿎은 저주를 퍼붓고 뾰족한 송곳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용서해선 안 될 적들은 쉽사리 용서하면서,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의 가슴엔 쉽사리 칼질을 해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검은제비는 잘 있습니까? 혹시, 당신은 검은제비 아닙니까? (182~183)

술주정뱅이면서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저주했던 우두머리 검은제비다.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를 이해하기보다 원망하며 눈물을 흘린다. 검은제비는 아버지를 대신해 일을 시작하지만 그 이후의 모습은 과거와 다른 핼쑥하다. 성인들도 어려운 일을 열두 살의 어린이가 하기에 힘겨운 일이다. 

골방에 갇혀 천하를 꿈꾼들 무슨 소용 있으랴.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우리 마음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죽음마저 불러오기도 한다. 골방 속에 갇힌 삶....... 아무리 활달하게 꿈꾸어도, 골방은 우리의 삶을 푹푹 썩게 하는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213)

홀어머니의 기대를 받으며 골방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청년의 꿈은 컸다. 하지만 골방에서 아무리 많은 꿈을 꾸더라도 현실로 나와 적응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썩고 만다. 이 골방 청년은 결국 윤희 누나에게 퇴짜를 맞고, 점차 자신의 꿈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청년들이 자존감을 잃고 집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방송을 봤다. 골방 청년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가족과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비교와 경쟁만으로 사회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6 없다. 비교와 경쟁은 필연적으로 낙오자를 만든다. 하지만 비교와 경쟁의 대상을 성적과 돈에 대해서만이 아닌 다양한 적성에 대해 적용한다면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조속히 나온다면 골방에서 은둔하는 청년은 스스로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어차피 죽게 마련이라면, 사는 동안만큼은 사람답게 사는 편이 한결 낫다. 사람들이 서로 기대하고 믿고 사랑하고, 때로는 배신당하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증오하고, 또 때로는 지지고 볶고 우당탕퉁탕 싸움박질도 하고 사는 광경에 어는 것 하나 부질없는 짓거리라곤 없다. 이 모든 광경은 저마다 소중한 인생의 한 장면들이며,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것도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잘 살기 위해, 사람은 결코 혼자 살지 않는다. (215)

우리에게 생로병사는 불가피하다. 누구나 죽음을 경험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우리의 생각대로 세상 일이 돌아가진 않지만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명장면들이다. <아홉살 인생>도 여민이 아홉 살에 경험하는 장면들을 모아놓은 소설이다. 


독서습관 835_아홉살 인생_위기철_2002_청년사(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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