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팔순을 맞는 부모님의 자서전을 써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자서전을 준비하려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평전이나 자서전류를 읽어보기는 했지만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정리해서 읽기 쉬운 책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전문적인 전기작가는 아니지만 요즘은 자신의 삶을 책으로 내는 분도 있고, 부모님의 삶을 자서전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도 본다.
나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만난 책이 <글쓰기의 시작은 자서전 쓰기에서>다. 책표지에 소개된 저자의 사진과 약력이 조금은 올드한 느낌을 주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저자는 글쓰기에 대한 전문가로서 깊이 있는 분석과 체계적인 접근 방법을 소개한다.
너무 디테일하게 기술하다보니 독자를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식을 정리한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도 있었다. 비슷비슷한 용어를 구분해 설명하지만 혼란을 주는 부분도 있다. 어쩌면 저자가 석사, 박사 과정을 지나며 습득한 지식을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자서전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문학작품들이 있는지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부모님의 자서전을 준비하며 이론적인 면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책의 후반부는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진다.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아래와 같이 인용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습관으로는 체험 쌓기와 이야기 만들기를 들 수 있다. 글감 찾기라고도 한다. 여행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의외로 글감을 얻기도 한다. (31)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통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사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고백하고 털어놓기를 즐기고, 동시에 타인의 인생 이야기 듣기를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7)
사람은 노년이 되어서도 성장을 한다.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데미안(1919)>에서는 일인칭 주인공 싱클레어가 대학생이 되기 전에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인 친구 피스토리우스를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피스토리우스 친구와 대화 도중 서로 간의 관점 차이를 그 친구에게 충고를 한 끝에 갈등을 겪게 되자 내면적 성장에 따른 절망과 고통에 처한다. 싱클레어는 그때 잠시 성장에 대해서 생각한 끝에, 각성된 인간의 의무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성장의 면모를 밝혔다. (42~43)
성장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주변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사회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화'란 자서전에서도 중요한 설정이다. '사회화'란 가정을 떠나 사회를 접하면서 모든 판단을 하는 과정이다. (62)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잠깐 동안에 지구상에는 다양하고 많은 일이 벌어진다. 일기를 꼬박 모아서 정리만 잘하면 자서전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하긴 쪽지나 메모도 많이 기록하고 모아두면 한 권의 책이 된다. (71)
History의 어원은 Historia인데, 그 의미는 고대 그리스에서 '여러 종족의 말과 관습을 알고 있는 현자를 지칭하는 말 Histor과 '찾아서 안다'는 뜻을 지닌 동사 'Historio'에서 파생했다. 역사란 말에 '찾아서 안다'라는 뜻이 있는 것은, 과거를 통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다. (74)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역사 만들기가 된다. 나의 역사라고 자부할 만한 자신의 모든 성장 과정이 자서전 내용이 된다. (75)
참신성을 갖춘 체험담을 담으며 소설을 능가하는 흥미와 감동을 주는 자서전으로는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러셀 베이커(Russel Baker, 1925~2019)의 자서전 <성장(연암서가, 1982)>을 들 수 있다. 그 후속편으로 <좋은 시절(1989)>이 있다. (81)
자신과 관계를 맺는 타인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와 조화를 꿈꾸는 것 자체가 바로 정체성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그 결과 안정, 안락, 기쁨을 누린다. (95)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예술 사조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있었다. 종전의 규격화된 중심에서 벗어나서 개성, 다양성, 자율성을 중시하는 태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자서전은 전통적 자서전과는 조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 예는 자아보다는 주체란 용어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97)
성공한 사람이나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 실패한 사람은 모두 지내온 인생길에서 터득한 지혜와 아쉬움을 정리해서 후손들과 공감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낸다. 이런 것이 정신적 욕망의 실현이며, 일종의 자아실현 욕구이다. (102)
이 문장은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내가 걷지 않은 길을 걸었던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 절망과 희망, 지혜, 아쉬움 등을 온전히 담아내고 영원히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기억이 곧 그 사람의 삶이란 말이 있다.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7)>에서는,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기억된 이야기가 그 사람의 현재 삶을 형성한다. (113)
소설에 나오는 '마들린 과자'는 과거가 현재화된 것이면서 현재의 관심이 과거를 불러일으킨 매체이다. 과거 기억으로 인해 현재가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면서 과거는 기억의 바다에 잠시 떠 있기에 '시간 밖(extra temporelle)'의 것으로 남는다. (115)
독서습관828_글쓰기의 시작은 자서전 쓰기에서_이정미_2021_생각나눔(240121)
■ 저자: 이정미
1957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문학석사.
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7년 월간문학 신인상에서 평론 당선으로 등단.
강남논픽션 수상. 착각문학회의 창작문학상 수상. 제1회 알베르 까뮈 문학상 수상.
저사: <학원이 학생을 망친다>, <기억의 편린>(2인 공저), <여자라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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