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의 <선망국의 시간>에서 인간의 소통에 대해 설명하며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을 소개했다. 1957년 흑백영화로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흑백영화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12명의 등장인물의 대사에 은근히 끌리기 시작한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12명의 배심원이 아버지를 살해한 18살의 청소년에 대한 무죄 여부를 전원합의로 결정하는 과정을 담았다. 장소는 배심원들이 토론하는 회의실이고,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찌는 듯이 더운 날씨가 환경이다. 한 마디로 사람이 전부인 영화다. 저렴하게 찍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정의란 무엇이고 소통이 왜 필요한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영화다. 좋은 책이나, 좋은 영화는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법이다.
12명의 등장인물이 돌아가며 소년의 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배심원들은 서로를 모르는 다양한 배경의 집단이다. 바람도 불지 않는 회의실에서 더위를 참아가며 배심원들은 토론을 시작한다. 소년의 유죄 여부에 대해 처음에 거수로 의견을 표현하는데 11명이 유죄, 단 한 명이 무죄를 주장한다. 대부분은 더위에 힘들어하며 빨리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소년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사형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데도 11명은 논리적인 추론을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유죄에 손을 든 것이다.
영화가 재미있는 점은 무죄를 주장한 한 명의 배심원이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의문을 제시하며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며 분위기를 바꿔가는 부분이다. 감정으로 가려졌던 소년을 둘러싼 상황이 점차 구체화되며 무죄로 의견을 바꾸는 배심원이 한 사람씩 늘어간다.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점도 이 점이다.
무죄를 주장한 사람이 1명에서 3명, 6명, 9명으로 그리고 마침내 11명으로 늘어난다. 배심원들은 주변인물의 증언을 토대로 상황을 복기하면서 소년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은 마지막 남은 한 명도 무죄에 동참하면서 전원일치 무죄로 결정한다. 후반부에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도 극적 반전을 더욱 통쾌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어 걱정이다. 서로의 주장에 대해 듣고 해석하고 반론하는 선순환이 사라지고 무조건 반대하고 귀를 막는다. 특히나 국가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통과 협치를 보기 힘들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이 거수기 역할을 하고 심도 있게 날 선 비판을 보기가 어렵다. 소년의 운명이 바뀐 것처럼 건전한 토론 문화는 국가, 사회, 개인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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