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라는 작가를 신경림의 <뭉클>에 소개된 그녀의 글을 보고 처음 만났다. 일제 시대를 살다가 해방을 보지 못하고 짧은 인생을 마쳤다. 아래 인용한 '꽃송이 같은 첫눈'을 읽으며 이 글이 해방 전인지 해방 후인지, 한국전쟁 직후인지, 산업화 시대의 가난한 시골 마을의 풍경인지 가름하기 어려웠다.
잔칫집에 다녀온 엄마의 머리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을 보고 비오는 줄 알았는데 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는 여인이 보인다. 서둘러 나서려다 바느질 하던 바늘에 손이 찔려 피가난다. '나는 언제까지 바늘과만 싸우려느냐?'라고 말하는 여인의 내적 갈등이 엿보인다. 일제시대의 여인들에게 집안을 벗어나 뭔가를 독자적으로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글 속의 여인을 통해 저자 강경애의 여성해방에 대한 의지를 볼 수 있다
강경애의 글을 보고 그녀의 짧은 삶을 상상했다. 해방을 접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곧 이어진 한국전쟁과 가난한 한반도의 삶의 살지 않은 것은 복이다.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이어진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주 짧은 순간을 살다가는 우리는 듣고 본 것만을 인식하고 살 뿐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있고 누군가의 탄생이 있다. 잠시 왔다가 구경하고 가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서로를 시기하며 살고 있다. 재테크에 미쳐있고 정치적 진영 논리에 휘말려 온국민이 움직인다. 때로는 잠시 시사에서 거리를 두는 것도 좋겠다. 유튜브를 열면 즐겨보는 스포츠, 정치, 경제 관련 컨텐츠가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누르기를 망설이고 있다.
<꽃송이 같은 첫눈> - 강경애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안 나는지 마치 촛불을 켜대는 것처럼 발갛게 피어오르던 우리 방 앞문이 종일 컴컴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문풍지가 우룽룽 우룽룽했다.
잔기침 소리가 나며 마을 갔던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어머니, 어디 갔댔어?"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치마폭에 풍겨들어온 산뜻한 찬 공기며 발개진 코끝.
"에이, 춥다."
어머니는 화로를 마주 앉으며 부저로 손끝이 발개지도록 불을 헤치신다.
"잔칫집에 갔댔다."
"응, 잔치 잘해?"
"잘하더구나."
"색시 고와?"
"쓸 만하더라."
무심히 나는 어머님의 머리를 쳐다보니 물방울이 방울방울 서렸다.
"비 와요?"
"비는 왜? 눈이 오는데."
"눈? 벌써 눈이 와? 어디."
어린애처럼 뛰어 일어나자 손끝이 따끔해서 굽어보니 바늘이 반짝 빛났다.
"에그, 아파라, 고놈의 바늘."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옥양목 오라기로 손끝을 동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눈송이로 뽀하다. 그리고 새로 한 수숫대 바자 갈피에는 눈이 한 줌이나 두 줌이나 되어 보이도록 쌓인다.
보슬보슬 눈이 내린다. 마치 내 가슴속까지도 눈이 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듯 마는 듯한 냄새가 나의 코끝을 깨끗하게 한다.
무심히 나는 손끝을 굽어보았다. 하얀 옥양목 위에 발갛게 피가 배었다.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이런 질문이 나도 모르게 내 입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싸늘한 대문에 몸을 기대고 어디를 특별히 바라보는 것도 없이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았다. 꽃송이 같은 눈은 떨어진다,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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